● 지정별 : 경상북도 기념물 제 105호
● 위 치 : 가천면 금봉리 산 42-1번지 일원
● 규 모 : 7.7 Km, 높이2.5m, 너비1.5m
● 면 적 : 169,493㎡
● 재 료 : 석재
● 연 대 : 가야시대(4세기경 추정)
● 지정일 : 1995년 1월 14일
● 개 요
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500년 전 성산가야(星山伽倻)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. 임진왜란 때 발견되었고, 1675년(숙종 1) 경상도 순찰사 정중휘(鄭重徽)가 4개월에 걸쳐 개축하였다.
해발고도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있으며, 면적 169,493㎡, 둘레 7.7㎞, 높이 2.5m, 너비 1.5m이다.
물이 풍부하고 공간이 넓어 장기전에 대비할 수 있는 포곡식(包谷式) 산성으로, 현존하는 영남지방의 산성 중 가장 규모가 크다. 동서남북의 포루 7개, 아치형의 동문, 수구문, 남소 문 등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, 일제강점기 때 발굴된 군기고에서 쇠창·쇠도끼·삼지창·갑옷·말안 장 등이 출토되었다.
이원정(李元楨)이 1677년에 편찬한 《경산지(京山誌)》에 따르면 합천과 거창의 군사가 배속되었고, 성 안에는 3개의 계곡, 객사, 군기고 등등이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정중휘가 개축할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.
동문지(東門址), 서문지, 남문지, 북문지, 동암문 지(東暗門址), 서문암지, 남문암지, 수구문지(水溝門址), 동치성(東雉城), 서치성, 객사지, 군기고지, 안국사지와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비석 5기가 있다.
암문은 일반적인 성문보다 규모가 작은 개구부를 내어 출입한 성문의 일종이며, 치(雉)는 성벽에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찰하고 전투시 성벽에 접근한 적을 격퇴시킬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직사각형 모양으로 쌓은 구조물을 말한다.
|